Sola Scriptura 오직 성경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Sola Gratia 오직 은혜
Sola Fide 오직 믿음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다섯 솔라가 모두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특별히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어느 하나를 설명하면서 다른 하나를 언급하지 않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오직 은혜’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오직 믿음’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오직 믿음’이라고 말한다면 당연히 ‘오직 은혜’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칼럼을 통해서 우리는 왜 구원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일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안에 내포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구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은혜의 선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완전한 분이셔서 우리를 구원하셔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은 은혜로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구원에 있어서 완전히 무능합니다. 무언가를 할 수도 없고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 즉 하나님께서 해주셨다는 말이고, 그것이 곧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또한
1) 우리가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이며
2) 은혜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주어진 것이고
3) 우리가 받은 구원이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럼 ‘오직 믿음’이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직 은혜’가 구원의 동기와 동력에 대해서 말한다면, ‘오직 믿음’은 구원의 수단 혹은 도구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의 유일한 동기와 동력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실제로 역사하는 유일한 수단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인해 믿음을 ‘통해서’ 구원 받습니다(엡 2:8).
앞선 글에서 몇 차례 언급되었던 것처럼, 당시 교회는 이 부분에 있어 굉장히 모호한 (그래서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 있다고 주장했던 펠라기우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교리를 전파 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죄와 벌을 분리하면서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은 받아도 그에 대한 벌은 남아 있어 선행(성사, 성지 순례 등)으로 그것을 갚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것을 갚지 못하면 연옥에서 남은 벌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고, 면죄부는 그런 노력이나 고행을 ‘헌금’으로 빠르게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은 했지만, 그 ‘은혜’를 받기 위한 모든 노력을 사람이 해야 했던 것입니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에 기초해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포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최선을 다해 의롭게 되어가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가르침에 성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임했던 사람이 마르틴 루터였습니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지만, 로마서 1장 17절은 그에게 언제나 무거운 짐이자 두려움이었습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가 배운 것은 어떻게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족하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의’는 곧 그를 심판하는 하나님의 공의였습니다. 루터는 더욱 구원을 위해 열심을 냈지만 그럴수록 좌절과 절망은 커졌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의’가 단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완전한 의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의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습니다. 그가 가장 강력하게 ‘오직 믿음’을 외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이고 기독교를 가톨릭뿐 아니라 다른 모든 종교와 구분하는 기준이 됩니다. 모든 종교는 인간의 노력과 성취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믿음’의 교리는 어떤 식으로도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죄인인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성경은 “전혀 없다.”고 답합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는 이런 성경적인 복음에 대한 가장 분명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모든 인류에게 암울한 소식을 전하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고 그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롬 2:6; 3:9~18). 누구도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기준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3:19~20).
“하지만 이제는!”
감사하게도 로마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장 암울했던 소식은 그 깊은 골짜기만큼 더욱 기쁜 소식으로 대체됩니다.
롬 3:21-22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율법을 최선을 다해 지킨 자가 아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의가 미칩니다. 바울은 27절에서 다시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단지 혹은 오히려] 믿음의 법으로니라.”라고 강조하고, 28절에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라고 결론 내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의는 ‘일하지 않고 얻은 의’고(롬 4:4~5), 다른 말로 하면 ‘믿음에서 난 의’입니다(롬 9:30). ‘작은 로마서’라고 불리는 갈라디아서에서도 바울은 동일하게 말합니다.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당연한 얘기지만, 사도 바울만 이렇게 가르쳤던 것은 아닙니다. 사도 요한도 다른 무엇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했습니다(요 1:12~13). 사도 베드로도 믿음이 궁극적으로 얻게 될 구원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라 말했고(벧전 1:5, 9), 구원받은 자들에 대해서 ‘믿는 자’ 그리고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벧전 2:7; 벧후 1:1).
예수님의 가르침도 다르지 않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말씀들에 어떤 종교적 행위나 율법에 대한 순종을 구원의 근거나 수단으로 끼워 넣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올라간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통해서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믿는 자를 경고하셨습니다(눅 18:9~14). 의로운 행위를 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는 자가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는 자는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 곧 믿는 자입니다.
이런 ‘오직 믿음’의 가르침은 다음의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의미합니다.
1. 행함이 구원(칭의)에 어떤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성경의 말씀들을 보면 행함과 믿음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곧 행함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일 뿐 아니라, 행함이 구원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에 기초하여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선포하시는데, 그 의에 우리의 행함이 무엇을 더하거나 빼지 못합니다. 비교적 의롭게 산 사람이라도 더 의롭게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에는 차별이 없고 완전합니다. 모두가 자격이 없고, 모두가 은혜로, 믿음을 통해,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2. 믿음이 구원의 동기 혹은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때로 어떤 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믿음이라는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 같습니다. 마치 내가 믿어 줬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또 그런 식으로 복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성경이 ‘구원받는 믿음’에 대해서 말할 때는 언제나 수단이지 동기나 조건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의 믿음이 구원의 동기가 되고 조건이 된다면, 우리는 믿은 것에 대해서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에 대해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은혜로 시작하셨고 은혜로 완성하시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3. 구원받는 믿음에는 행위가 따라오지만, 믿음에 어떤 행위가 따라와야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의롭다고 칭하실 때, 하나님 보시기에 그가 얼마나 의로운 삶을 살았는지 혹은 앞으로 얼마나 의로운 삶을 살 것인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그렇다면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0%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이나 50% 혹은 그 이하 1%의 행함이라도 필요하다는 말이나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이고 최종적으로는 행함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어느 정도의 행함이든지 그것을 ‘통해서’ 즉, 행함을 수단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렇다고 행함 자체가 무의미하거나 선택 사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과 행함이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닙니다.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진정 구원받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행함으로 그 믿음이 진실임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는 이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구원하지 못하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약 2:14). 이 말을 바꾸면 구원하는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야고보는 또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 유익이 없는 것, 죽은 것, 헛된 것이라고 합니다(약 2:16, 17, 20). 행함이 그 믿음이 참된 것임을 입증하기 때문입니다(약 2:24).
바울도 갈라디아서에서 믿음에 행위를 더해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선한 삶도 의미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믿는 자들의 믿음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이기 때문에 그들은 삶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했습니다(갈 5:22~23). 예수님도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 7:16)라고 하시며,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라고 선포하심으로 구원받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가르치셨습니다. ‘오직 믿음’은 믿음의 열매로서의 행함을 부정하거나 간과하지 않습니다. 그 믿음은 우리를 심판에서 건져낼 뿐 아니라 과거의 행실에서도 건져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그 아들을 닮아가게 하는 일도 시작하십니다. 더욱 그 아들의 모습을 닮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그것이 구원의 목적이며 삶의 목적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오직 믿음’의 진리는 믿는 자로 하여금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오직 믿음’은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없고 우리 안에 자랑할 것이 없음을 보게 합니다. 내가 뭔가 잘한 것 같고 내가 뭔가 이뤄낸 것 같아 우쭐해지고 교만한 마음이 싹트려 할 때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엡 2:8-9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리스도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빌 3:3). 우리가 더욱 그에 합당한 백성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참고: 유평교회 홈페이지(achurc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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