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8

지금

이제까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어. 그 시간이 참 달콤했었지. 나만을 위해서 존재했으니까 늘 그랬던 것처럼 항상 그렇게 나만을 위한 것이 당연하지 하며, 생각하고 살아 왔어, 지금까지. 나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존재한다고 믿었어. 의심도 안했어, 당연하게 나의 의지대로 됐으니까 불현듯 가슴을 스치는 싸늘한 시선이 난생 처음, 나를 뒤돌아 보게 했어. 나를 위해 애쓰는 그들을 봤어. 미쳐 가늠조차 못 한 나의 한 발자국이 그냥 딛는 것이 아닌 것을 지금,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 가슴이 미어져 오고 눈물이 쏟아졌어. 그리곤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가 없었어. 나를 내려 놓고 같이 걸을려고 해 혼자만이 아님을 알았으니까 손도 내밀어 함께 잡고 서로 힘이 되주자고 했어. 그리고, 나를 나만이 아닌 손이 필요한 사람..

글쓰기 2021.04.28

농촌풍경

조용한 마을에 소박한 겨울해 자리잡고 을씨년스러운 삼신할멈 사당앞까지 비취며 한 나절 나이를 먹어간다. 양지바른 산허리에 자리잡은 묫등 위로 어제 내려 쌓인 눈이 햇살 머금고 녹아 내리면 부드러운 산들바람 대나무숲을 지나며 처녀 가슴 셀레게 한다. 병풍처럼 마을을 품고 있는 뒤산에 오르면 분칠한 듯 새하얀 각선미 뽑내는 자작들의 춤사레는 하루의 피곤을 씻겨내는 손주들의 재롱처럼 든든한 살림밑천이 되어 흐믓하게 한다. 어느덧 짧은 겨울해 뉘엿뉘엿 넘어가고 굴뚝에 연기오르면 나무하러간 똘이도 개울에 빨래간 순이도 바쁜 손, 언 손 불어가며 저녁인가 한다. 그렇게 농촌은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며 또 하루가 저물어 간다.

글쓰기 2020.11.14

관계

내가 그대를 만남은 그대가 나를 만났기 때문이요. 내가 그대를 항상 봄은 그대가 항상 나를 봄이요. 내가 그대를 항상 생각함은 그대가 나를 항상 생각함이요. 내가 그대를 하나처럼 느낌은 그대가 나를 하나처럼 느낌이요. 내가 그대를 항상 그리워함은 그대가 나에게 항상 그리움을 선물함이요. 내가 그대를 찾아 항상 동산을 오름은 그대가 나를 그곳에서 부른 까닭이요. 내가 그대를 항상 한 몸처럼 여기는 것은 그대가 나를 항상 지극한 믿어줌이요. 내가 그대를 항상 사랑함은 그대가 나를 끔직이 사랑함이요.

글쓰기 2020.11.08

그냥 놔둬

자연은 억지로 꾸미지 않고 상생하며 어울린다. 넘치면 과한 그대로 내어 주고 모자르면 모자란 그대로 보듬고 어울어 지낸다 달달한 햇빛도 나누고 시원한 바람도 나누고 상큼한 공기도 함께 나누며 자연은 자연스럽게 넉넉한 대지를 함께 나눈다. 자연은 산허리가 잘리듯 착취로 인해 황폐해져 끝이 안 보이는 칠흑같은 터널에서도 절망이 아닌 아침 안개같은 희망을 품고 보듬어 호흡하고 함께 나누며 온 종일 생명스런 에너지를 억척스리 모아서 찢어진 상처를 붙들고 긴긴 밤 잠도 잊은 채 닦고 씻어내어 아픈 가슴과 망가진 몸에 한땀 한땀 에너지를 바르며 긴 들숨을 통해 회복하고 복원하는 수고를 하다가 넉넉한 아침을 맞으며 건재함을 알려준다. 잘 났다고 우쭐한 인간에 의해 아픈 자연은 발길이 뜸해지면 또 다시 한없는 사랑을 ..

글쓰기 2020.10.27

악산을 닮고 싶은 나

아침이슬 머금은 풀잎도 산 마루에 걸터 앉은 뭉게구름도 갓 핀 어설픈 어린 꽃봉오리의 수줍은 숨소리도 시린도록 찬 계곡물도 넉넉히 품고 보듬은 후더운 평상바위도 모두 품고 있는 악산을 닮고 싶다. 그 악산을 닮으면 눈이 배부르고 그 악산을 닮으면 가슴이 시원하며 그 악산을 닮으면 머리에선 엔돌핀이 넘치고 그 악산을 닮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나는 나를 잊고 악산이 되고 싶다. 내가 악산이 되면 작고 소소한 기쁨이 배가 되고 내가 악산이 되면 모두 다 즐거워 보이며 내가 악산이 되면 값없이 나누며 웃으며 내가 악산이 되면 넉넉한 정을 나누고 내가 악산이 되면 한없이 퍼주며 내가 악산이 되면 모두의 어머니가 되리라 담뿍 패인 바윗틈으로 찾아온 오후 햇살처럼 굽이쳐 흘러가는 산마루 위의 저녁구름처럼 소담한..

글쓰기 2020.09.27

어린시절

떠날듯 울어 마수걸이한 남도땅 조용한 산골학교 십오리길 멀다않고 장난으로 좁히고 잰걸음으로 밀 보리 새알 유혹할때 책보속 책은 만년설처럼 잠만 잔다 간혹 장서는 날 풀피리 풍악소리 흥 돋고 호기어린 눈따라 놀자 졸면 예 맞춘듯 장닭 슲도록 탄시 읖하고 곡마단 재주에 오금 절일때 회초리의 단맛으로 아뿔싸 벌써 요만큼 컷어라우. 함박한 눈으로 뒤덮힌 앞산으로 뒷산으로 새몰이 나설때면 잰가슴은 콩당콩당 땀에 흠벅젖은 옷 그대로 골아 떨어지고 눈뜨면 또 즐거운 하루가 시작된다.

글쓰기 2020.09.15

사 모

젊은 시절 좋아했던 시입니다. 조지훈 작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말이 있음을 알았을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잊혀지기 전 두고 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어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해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마지막 한 잔은 이미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해 조지훈(趙芝薰, 1920.12.3∼1968.5.17) 경상북도 영양(英陽) 출생. 본명 동탁(東卓)...

글쓰기 2020.09.15

잡초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공기와 햇빛과 물이면 충분하다. 바랄것이 없다. 원치 않는다. 보살핌을, 바라지 않는다. 손길을, 있는 그대로가 좋다. 함께 어우러져 있어 좋다. 한평도 필요없다. 한 줌이면 넉넉하다. 목을 축일수만 있다면 된다. 엉덩이만 붙일수 있으면 족하다. 밟혀도 꺽여져도 찍어져도 끊여지지만 않으면 된다. 사람의 손길을 원치 않는다. 물을 달라고도 않는다. 바람을 막아 달라 않는다. 줄기가 꺽이지 않게 버팀목을 해달라 않는다. 주신 것에 감사하며 하루를 나눌수 있으면 된다. 우리에겐 억지가 없다. 우리에겐 강요가 없다. 우리에겐 손해도 없고 이익은 더더욱 없다. 그저, 함께 나눈다. 함께 호흡하고 함께 살아가며 함께 필요한 만큼 갖고 나눈다. 태초에 하나님이 주신 명령대로 태어나고 자라고 여물..

글쓰기 2020.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