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많은 비판에 직면한 한국기독교와 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지만 자구책을 내놓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기독교가 개독교로 통용이 되고 있는 현실이 바로 기독교와 교회의 심각함을 대변해주는 대표적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활을 말씀하신 예수님의 명령이 무색할 정도로 세상과 거꾸로 가고 있는 교회는 이미 사망선고가 내려진 상태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분열할 수 있을 만틈 찢어진 교회와 교단 그리고 북한의 김씨 세습왕조같은 교회의 세습, 세속적인 물질추구, 양적인 팽창과 도덕적 타락(성욕)으로 부조리의 교집합이 되버린 교회에 주인이신 예수님이 없는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기독교의 민낯이 매우 심각합니다.
이러한 한국교회와 기독교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어떻게 해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교회와 기독교에 주여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지 분석해보자 합니다.
한국 교회는 1866년부터 지금까지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조선말기 쇄국정책으로 시대에 뒤처진 사회에 선진 문명과 기술, 교육, 의술을 전하며 근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이바지하였습니다. 조선을 계승한 대한제국은 나라의 체질개선을 위해 열심을 다했지만 여전히 열강에 의해 간섭과 위협을 받는 상태에 놓여 있었는데 이 당시 선교를 위해 입국한 많은 선교사들의 헌신과 열정이 근대화에 일조를 하게 됩니다. 선교의 3자 원칙으로 선교사로부터 전수받은 우리의 신앙선배의 충성스러운 노력으로 점차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며 민족의 수난기간이었던 일제의 주권찬탈의 오욕속에 민족의 자존과 자주 독립의 희망의 불씨를 지켜왔던 교회가 존재했었습니다.
이렇게 한국 교회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게 되기까지 신앙의 선배들이 각고의 노력을 해온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민족의 수난을 외면하지 않았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민중들과 애환을 같이 했으며 암울한 사회를 계몽하고 교육, 의료, 학문,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해 온 것입니다. 일제의 교회핍박에 맞서 싸우고 공산주의자에 의해 수 많은 믿음의선배들이 순교의 피를 뿌리며 믿음을 지켜왔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70년대 이후에는 사회의 민주화와 정의를 위해 싸우기도 하는 등 역사발전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과 희생으로 인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들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고,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도시나 시골이나 아디를 가도 교회가 없는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약 30%에 이를 정도로 성장을 한 것입니다.
교회와 기독교인이 많아지면서 사회에 긍정적인 면보다 여러 가지 부정적인 모습등으로 인해 좋지않은 이미지가 쌓여 가며 일반인들에게 주요 종교들 중 가장 나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일반인들이 종교를 가질 경우 선택하고 싶은 종교에서 기독교가 가톨릭이나 불교에 비해서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낼 정도로 비호감도가 높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성장의 감소와 영향력 감퇴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교인은 감소한 반면 교회만 증가하는 현상은 한국 교회가 그만큼 정상적이지 않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근래에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는 교회와 기독교의 모습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교회안에서, 목사들과 교인들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적 모범이 되고 이끌어 나가야 할 주체인데도 불구하고 악영향을 끼치는 일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를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과연 한국 교회에 미래가 있는가?
한국 교회가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을까?
회개와 변화가 없다면 한국교회는 상식적인 생각과 생활을 가진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교인들만의 교인만을 위한 세상으로부터 낙오된 공동체로 전락하게 될 위험이 매우 큽니다. 그만큼 한국 교회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고, 이제는 그 위기를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의 현실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것들의 문제점들을 파악하며, 더 나가서 그 해결 방안들을 찾아보는 일은 더 이상 늦춰질 수 없습니다. 우선적으로 한국 교회를 엄격하고 냉정하게 보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주님이 주인인 교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가 세상적인 문제에 빠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문제는 일단 중요하게 보이는 현상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배타적 독선과 분열
수 많은 교단으로 분열되어 있는 모습이 대표적인 한국 교회와 기독교의 문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그만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 교단을 세우고 또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현실을 보면 참 믿음을 갖고 복음을 전하는 기관인지 의구심이 갑니다 . 자기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 하고 반목하고 협력하지 못 하면서 어떻게 사회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낸들 들을 사람들이 있을까요?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얼룩진 모습을 보면서 사회적 솔선수범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부끄러움도 모르는 교단과 교회의 현실은 절망을 안기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오직 한분이며 우리의 지침이 되는 성경도 하나인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하나가 아니고 수 많은 겉가지로 찢어져서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이분법적 신앙관으로 자신만이 최고라는 우월심으로 귀를 막고 '함께 '가 아니고 '나만'이 문제인 것입니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천주교가 유일하게 잘 하는 것이 교황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한 목소리로 한 방향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점은 기독교는 깊이 반성하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따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골백번 외치지만 실제로 자신은 이와 동떨어진 삶을 사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는 현실을 회개하지 않고선 결코 병폐를 도려낼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들을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일치운동의 순수한 동기를 우리는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일치운동, 에큐메니즘( Ecumenism)은 개신교회의 일치에서 시작하여, 개신교회와 정교회의 협력으로 이어진 기독교 교회 일치 운동입니다. 기독교의 다양한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교회의 보편적 일치 결속을 도모하는 신학적 운동으로 한국 교회는 거듭나서 불필요한 교리의 차이에 대한 논쟁을 삼가하고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신교 또는 복음주의,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는 16세기 서방교회 개혁 찬성파인 교회의 개혁가들의 종교개혁을 통해 생겨난 기독교의 한 전통입니다. 11세기 교회 대분열로 공교회(보편교회) 중심이었던 지금의 동방교회에서 서방교회가 분리되었고, 이후 16세기 서방교회내에서 종교 개혁 운동의 '반대파'인 천주교회와 '찬성파'인 개신교가 분리되었습니다. 이후 기독교의 가장 주된 종파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에서 정교회, 천주교회, 개신교회로 형성되었으며 개신교 내부적으로 크게 '개선주의'인 개신교 공교회주의의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 등의 교단들과 '재건주의'인 개혁주의의 장로교, 침례교 등과 재침례파, 재림교 등의 교단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말하는 '기독교', '교회'는 일반적으로 '개신교'를 가리킵니다. |
2. 고개를 들 수 없는 교회세습와 대립
교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교회는 목사의 개인적인 사유물이 아닙니다. 또 교회는 교회의 살림을 책임지는 장로나 집사의 소유물이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를 세습하고 있고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공산당의 세습왕조도 아닌데 대한민국 교회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참 부끄러운 한국 교회의 민낯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교회 세습이 가능한 것은 우리 한국 교회의 독특한 권위주의 구조 때문이며 민주적인 방식으로 교회의 행정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많은 교회들이 담임목사 1인 중심의 교회체제를 가지고 있고 이것을 유지하는 것이 마치 목회의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처럼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체제나 행정을 철저하게 목사 1인 중심으로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권한이 목사 1인에게 집중되며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각종 회의나 기관들은 요식 행위와 절차로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길들여지고 체질화된 구조 속에서는 담임목사가 은퇴할 나이에 이르면 얼마든지 자기 아들에게, 혹은 자기가 물려주고 싶은 사람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목사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니라고 속으로 외치고 마는 것입니다. 만약에 민주적인 구조 속에서 민주적인 투표와 절차를 거쳐서 후임자를 선정한다면 후임자가 아들이건 형제이건 아무런 상관이 없고 시비할 이유가 없습니다. 잡음으로 교회가 흔들리지도 않으며 외부에 소문이 나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생산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대형화된 교회속에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재정이 운영되고 있으며 목사 1인 체제가 유지되는 교회는 세습이라는 문제가 항상 대두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외에도 현재 한국 교회의 권위주의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특히 교회내의 모든 갈등과 분쟁, 분열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세습문제가 반대의 경우도 존재합니다. 권위주의(권력)가 목사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가 깊은 교회들은 오히려 장로와 당회의 권위가 목사의 권위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이 대표이고 목사는 임시직이라는 얘기까지 나도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의 교회에서는 실제로 당회가 목사의 건강하고 소신 있는 목회를 방해하는 일이 매우 흔하고 또한 목사가 능력 있어서 교인들의 지지를 획득할 기미가 보이면 미리 트집을 잡아 쫓아내는 일까지 일어나는 실정이니 청빙된 목사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목회를 하지 못 하고 당회나 장로의 의중을 살피는 웃고픈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단 역시 권위주의가 심각하여 교단이 갈라지고 어느 날 갑자기 새로 교단이 생겨 납니다. 총회장이 되기 위해 정치판에서나 볼 수 있는 금품공세로 하면서까지 애쓰는 것을 보면 권력을 얻으면 분명히 얻는 것이 있기 때문에 부정한 짓을 하면서까지 당선되고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거로 인한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바로 배신하고 죽은 가룟 유다대신 맛디아를 12제자로 선출한 방식이 제비뽑기로 선출하면 됩니다. 신청을 받고 교단에 정한 자격조건을 충족한 사람들중에 제비뽑기로 선출하면 타락하고 세속적인 부정적인 선거가 사라지고 형평성의 문제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제비뽑기는 선거과열과 금전살포 및 수수의 폐해로 인해 거룩한 교회가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습과 같은 해괴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할려면 목사의 임기제를 도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임기 5년제에 1회에 한하여 연임을 하는 제도를 하면 장로나 당회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고 소신있게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으며 또한 임기제로 인해 권위를 만들기 쉽지 않아 세습을 꿈꾸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로 등 임직자들의 임기제도를 시행해서 종신 장로와 임직자에 의해 발생하는 애로사항을 없애서 압력으로 교회와 당회을 좌지우지하지 못 하도록 하면 권위주위에 의해서 발생하는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권위는 자신이 권위자가 되려고 하거나 권위가 억지로 생기거나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권위가 없을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오히려 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예수의 권위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권위를 발견하고 "저 사람의 권위가 어디서 나오는가?" 라고 반문했습니다. 권위는 지위나 명목, 형식에서가 아니라 실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권위가 참다운 것이고 위엄이 더해지고 믿음이 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낮아짐에 있습니다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성립자체가 하나님의 인간됨,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높으심이 낮아짐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보여주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겸손와 자기비움으로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큽니다. 기독교의 존재 이유 혹은 존재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승리는 세상적인 승리가 아니고 반대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겸손과 봉사와 희생 그리고 그 위에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그는 "누구든지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겠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라고 했으며 또한 "살고자 하는 자는 죽겠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겠다."고도 말씀하셨듯이 이 말에 대한 믿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기독교의 권위는 권위를 갖고자 하는데서 얻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갖지 않고자 하는 데서 얻어집니다. 그것은 권위가 아니라 실제를 취하는 일과 동일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실제, 즉 본 모습은 먼저 낮아지고 남들을 섬기는 종의 도를 취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나갈 길이고 기독교인의 바른 길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는 것이 예수님의 호소이자 요청이었다. 그 말씀을 잘 따라 자기부정과 겸비와 봉사의 길을 가는 사람이 바로 참다운 신앙과 인격과 삶과 능력을 인정받고, 따라서 권위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권위만이 참다운 권위이다. 원래 기독교에는 권위주의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예수의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낮아지고 사랑하는 데 있지, 자신의 권위를 높이거나 도모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2. 세속적인 물질추구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또한 세속적인 물질추구일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기독교 그리고 기독교인이 교회에서 복음을 팔고 아니 팔아야 하고 팔리지 않으면 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십일조를 강요하고 건축헌금을 내도록 만들며 심지어 직분에 주는 대신 감사헌금을 강요하는 현실에 직면한 교회는 기업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구원을 위한 마중물입니까? 하는 반문이 할 정도로 오염이 되어 있고 잘 못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위치와 부에 따라 대접이 다른 교회는 진정한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남보다 내가 더 잘 되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옹졸한 마음으로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 그리고 많은 헌금을 낸 것을 자랑하고픈 기독교인들로 인해 진정한 그리스도의 도를 찾기 힘든 우리의 모습은 참 불쌍하게 보일뿐입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은 유창하고 유머스러운 설교를 하는 목회자가 아닌 시대에 맞는 말씀을 찾아 연구하고 준비해서 교회 공동체에 계시되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명과 책임을 갖고 해야 합니다. 목사의 설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말씀에 비추어서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하고, 죄와 오류와 무력함을 보게 하고, 죄인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그래서 자유와 생명을 얻게 하고, 참된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북돋아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야 진정한 목회자의 길을 갖는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인 교회의 리더가 솔선수범하고 주님의 뜻을 새기며 바른 길을 갈때 자연스럽게 교회의 구성원들이 따르게 됩니다. 교회가 주님의 말씀을 들을려고 하면 되는데 사람들의 반응에 맞루어 설교를 한다거나 교회를 운영하게 되면 탈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일주일 헌금 목표가 얼마이고 건축헌금의 목표를 정해서 기도하며 강요하는 한 세상의 논리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이러한 세속적인 물질에 종속이 되어버리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교회의 일관된 가치관도 없이 다른 교회에서 성공한 경우를 베껴서 따라하기나 꼭 필요할 때 해야 하는 부흥회 등을 신도의 확보나 재정문제의 해결 그리고 교회안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용으로 남발하여 순수한 부흥회의 의의를 퇴색시키는 행위 등은 마치 잘 팔리는 물건을 갖다 놓고 많이 팔아야만 한다는 식의 세속적 상업주의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팔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저급한 세상적인 이치가 한국 교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는 복음과 진리에 대한 순수성도, 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는 자기부정의 십자가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교회가 잘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하는 교회,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무리한 방법을 동원하여목표달성만을 강조하는 사고와 행태가 지배하는 교회, 그래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식의 목회로 일관하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로서 존립할 수 없고 존립해서도 안 됩니다. 외형만 교회이지 사실상 기업이나 다름이 없으며 목회가 아니라 마케팅이고 목사가 아니라 경영자이며 교회등록증은 사업자등록증이 되는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사람들이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힘과 물질과 열성을 모아서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생각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의 목표를 위해서 사람들을 총동원한다든지, 사람들을 수단으로 삼는다든지, 사람들을 교회에 예속시킨다든지 하는 일도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가 대가를 기대하거나 이익을 목표로 무슨 일을 계획한다면 세상속으로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 교회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고, 사람들을 섬기도록 자리 매김을 해야 하며 세속적 물질을 추구하는 교회는 이 중요한 본분을 지키기가 불가능합니다.
교회의 목표는 세속적인 성공에 있지 않으며 목회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세속적인 성공을 지향하는 목회자들로 인해 많은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이는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대형교회, 신도가 많은 교회 더블어 재정이 넘치는 교회는 참된 성공이 아니고 세상적인 성공입니다. 이런한 교회를 꿈꾸는 목사는 진정한 리더가 아닌 삭꾼이며 세속적인 탐욕에 빠진 채 엉뚱한 방향으로 불을 밝히는 등대와 같습니다.
한국 교회를 세속적인 물질추구의 병폐로부터 되살리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확고한 교회관과 자의식을 가져야 하며 " 왜 교회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목회자는 존재이유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 라는 끊임없는 자기 물음과 성찰 속에서 교회를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의지와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값없이 주신 복음과 이 복음을 위해 부름받은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음에 감격하며 항상 감사하는 자세를 갖어야 합니다.
교회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다. 즉 주님의 은총으로 받은 복음으로 새롭게 거듭난 자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예배하고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자발적으로 헌금하고 자발적으로 봉사하며 교회가 서야 합니다. 교회는 말씀을 있고 은혜가 있으며 사랑이 있고 참된 삶의 기쁨을 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진정한 교회입니다.
3. 이기주의적 자세
기독교 사회문제 연구소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결과를 보면 의미하는 바가 매우 충격적입니다. 질문은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 보다 더 이기적인가?' 이었는데 '그렇지 않다.'고 한 사람이 17.5%에 불과한 반면 '그렇다.'고 답변한 사람은 31.7%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교회가 외적 확장에 너무 치중하고 헌금 등을 강요하면서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특성을 나타낸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가장 이타적이고 자기 희생적이어야 할 기독교가 그 사회에서 "이기적" 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런 상태라면 과연 교회가 이 사회에서 얼마나 더 존립할 수 있을까 하는 위기심과 우려를 씻을 수가 없습니다. 이후 비슷한 조사에서도 기독교에 점점 비우호적일뿐만 아니라 나쁜 이미지로 인식이 되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노방전도를 한다면서 확성기를 이용하여 큰 소리로 전도를 하며 찬양을 하는 행위가 과연 옳은 것인가?
주변 이웃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지 않고 오히려 불편을 초래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가?
대형교회의 교회버스를 이용한 편의제공으로 타 교회 성도들을 유인하는 것도 심각한 집단 이기주의의 표본이 아닌가?
직장문제로 먼 곳으로 이사간 성도에게 자기 교회로 계속 나오라고 강요하는 목회자들 ...
자기만 생각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은 맹목적이고 안타깝습니다. 이들은 자기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자기 외의 모든 것들은 무시해 버립니다. 또한 자기만 되면 된다는 생각, 남들이야 어쨌든 자기 목표만 달성하고, 자기 뜻만 관철시키면 된다는 태도로 일관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 해당됩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 자기밖에는 안중에 없는 사람들,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남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철저하게 자기만을 위하는 사람들... 유독 그런 사람들이 한국 교회에는 많다는 것은 너무 이율배반적인 일입니다. 실제로 한국 교회에는 이기적인 행태가 만연해있고, 그것 때문에 일반 사회인들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마저도 눈살을 찌푸리고 가슴아파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이기적인 행동이 일부 광신자들만 아니라 목회자나 교회 자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기주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기주의가 아닌 이타적인 사랑을 전하는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만 알고, 자기만 위하는 이기심은 형제의 관계, 더 나가서는 공동체를 파괴시키며 공동체의 단절과 대립 그리고 경쟁과 분열을 가져오는 적펴일ㄴ 것입니다. 이기심에는 기독교가, 교회가 지향하는 참다운 평화나 사랑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사람들에게 참 자유와 생명을 주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런 예수를 주로 믿고 고백하는 교회가 어떻게 이기적일 수 있습니까? 본회퍼는 "교회는 오직 남들을 위해 존재할 때만이 교회이다."라고 말했는데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정곡으로 찌르는 말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빛에 비추어서 날마다 자신의 이기심을 꺾고 진정으로 타인를 위해 사랑하고 봉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며 그럴 때만이 교회가 시대와 인간을 위한 참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한국 교회의 이기주의 문제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교회와 교인들의 근본적인 그리고 지속적인 자기 변화가 요구되며 이기주의는 인간의 가장 뿌리깊은 죄성에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늘 깨어서 각성하고 빠지지 않을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4. 도덕적 타락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원인중에 하나가 바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 타락"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도덕적 타락에는 목회자의 성범죄뿐만 아니라 사회적 도리 또는 역할인 재정사용의 투명성과 종교인 과세에 대한 비토 등도 포함됩니다. 한국교회가 턱없이 낮은 사회적 신뢰도를 회복하려 기본적으로 윤리와 도덕 회복'이 급선무이며 이를 위해서는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가장 피해가 큰 것이 목회자의 성범죄입니다. 목회자 성범죄 문제는 목사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비판 나아가 하나님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으로 번질 정도로 매우 엄중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선한 역사를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위치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일을 자행한다는 것 자체로도 심각한 범죄입니다.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이에 대한 응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범죄에 대한 개인적인 처벌과 함께 사회적 책임도 함께 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처벌로 교단과 교회에서 영원히 목회자 신분을 박탈하여 엄정한 댓가를 치루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 문제는 확연히 줄어들고 사라질 것으로 판단합니다.
또 한편으로 불투명한 재정에 있습니다. 재정상황을 투명하게 관리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투명한 재정관리는 교회를 신뢰하게 하며 교회와 교인들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의심과 불신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대형교회에서 나오는 불법적인 재정을 유용하여 목회자와 임직자가 구속이 되는 것을 종종 지면을 통해 들을때마다 기독교인이나 일반인들의 교회애 대한 불신은 커져갈 수 밖에 없습니다. 종교인(목회지)에 과세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만 교회의 반대로 여전히 실현되지 못 하고 있는 보편적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군사독재와 협력하며 얻은 교회의 흑역사인 이 문제는 스스로 사회적 윤리와 도덕적 신뢰를 무너지게 하는 한 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모인 재정을 통해 사회의 약자나 도움이 손길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도록 일종의 기금을 만들어 사회에 환원을 하는 방법도 있는데 오직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교회의 타락한 도덕성의 회복은 요원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결론적으로 한국교회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태입니다.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우선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4가지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만 추락하고 떠헝진 신회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사공이 많은 배는 산으로 간다는 격온처럼 찢어진 교단의 분열을 화합하여 일치하고자 노력이 필요합니다. 작은 교단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세속적인 물질에 현혹돼서 거대주의 최고주의에 빠져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어리석음과 그리스도의 낮은 대로 임하시고 자기를 낮추며 희생과 사랑의 본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의 자기희생을 통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이웃의 아픔을 품을 수 있는 이타적인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화룡점정은 바로 윤리와 도덕적 신뢰회복입니다. 교회가 세워진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문제점을 극복하고 사람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본연의 모습을 회복할 것으로 확신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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