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15

님에게 보내는 가을의 연시

사랑하는 님이시여! 오늘은 무엇을 생각하시며 무엇을 계획하십니까? 어제밤 꿈속에서 당신의 모습이 나를 찾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당신은 그리 화려하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은 평범한 모습으로 항상 나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나는 당신의 이런 모습을 좋아합니다. 오곡이 늦은 가을 끝자락에 자신의 노력을 평가받듯이 한없는 풍요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역시 가을은 넉넉한 계절이며 우리에게 틈실한 마음를 나누게 합니다. 사랑하고 항상 같이 있고픈 님이시여, 이 가을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런 계획이 있으시다면 부디 저를 잊지 마시고 기억하셔서 동행하는 영광을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님과 함께 가을을 흠뻑 가슴으로 적시고 맛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결실로 영그러진 풍성한 가을을 위해서 씨뿌렸던 봄..

글쓰기 2020.09.19

어린시절

떠날듯 울어 마수걸이한 남도땅 조용한 산골학교 십오리길 멀다않고 장난으로 좁히고 잰걸음으로 밀 보리 새알 유혹할때 책보속 책은 만년설처럼 잠만 잔다 간혹 장서는 날 풀피리 풍악소리 흥 돋고 호기어린 눈따라 놀자 졸면 예 맞춘듯 장닭 슲도록 탄시 읖하고 곡마단 재주에 오금 절일때 회초리의 단맛으로 아뿔싸 벌써 요만큼 컷어라우. 함박한 눈으로 뒤덮힌 앞산으로 뒷산으로 새몰이 나설때면 잰가슴은 콩당콩당 땀에 흠벅젖은 옷 그대로 골아 떨어지고 눈뜨면 또 즐거운 하루가 시작된다.

글쓰기 2020.09.15

사 모

젊은 시절 좋아했던 시입니다. 조지훈 작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말이 있음을 알았을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잊혀지기 전 두고 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어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해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마지막 한 잔은 이미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해 조지훈(趙芝薰, 1920.12.3∼1968.5.17) 경상북도 영양(英陽) 출생. 본명 동탁(東卓)...

글쓰기 2020.09.15

잡초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공기와 햇빛과 물이면 충분하다. 바랄것이 없다. 원치 않는다. 보살핌을, 바라지 않는다. 손길을, 있는 그대로가 좋다. 함께 어우러져 있어 좋다. 한평도 필요없다. 한 줌이면 넉넉하다. 목을 축일수만 있다면 된다. 엉덩이만 붙일수 있으면 족하다. 밟혀도 꺽여져도 찍어져도 끊여지지만 않으면 된다. 사람의 손길을 원치 않는다. 물을 달라고도 않는다. 바람을 막아 달라 않는다. 줄기가 꺽이지 않게 버팀목을 해달라 않는다. 주신 것에 감사하며 하루를 나눌수 있으면 된다. 우리에겐 억지가 없다. 우리에겐 강요가 없다. 우리에겐 손해도 없고 이익은 더더욱 없다. 그저, 함께 나눈다. 함께 호흡하고 함께 살아가며 함께 필요한 만큼 갖고 나눈다. 태초에 하나님이 주신 명령대로 태어나고 자라고 여물..

글쓰기 2020.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