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에 프로이센 프리츠 출신의 귀츨라프(K. F. A. Guetzlaff)이 기독교 선교사로서 처음으로 한문성경을 조선에 전했으며 초기 기독교가 한국과 만남이 시작되었고 그 후 30여년이 지난 1865년 9월 영국선교사인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가 조선에 대한 선교의 꿈을 갖고 1차로 황해도 연안 창린도에 도착했으며 두 달여 동안을 그곳에 머물며 섬사람들에게 한문성경을 나누어 주고 전도를 한 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음해인 1866년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는 대동강으로 배를 타고 평양으로 향했으나 조선 선교를 펼쳐 보기도 전에 죽음을 당하며 한국 기독교의 최초 순교자로 기록되었습니다.
타고 온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에 있었던 15일간의 짧은 시간을 통해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방화로 배가 불에 타고 죽음을 예감한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는 전도하기 위해 가지고 온 성경이 불타기 전에 대동강변에 몰려있던 조선사람들에게 던져주면서 예수, 예수를 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권의 성경책을 품고 배에서 내려와 체포되었고 참수되어 순교의 피를 조선의 땅에 뿌렸습니다.
죽기전 자기를 죽인 조선병사인 박춘권에게 성경을 주고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 갔다고 합니다. 가슴에 품은 선교지인 조선땅에 밟자 마자 순교을 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의 순교는 복음의 시작이 되는 한 톨의 밀알이 되어 조선 속으로 전파되는 기적을 이뤄냅니다. 그것도 자기를 참수한 사람과 필사적으로 강변으로 던진 성경책을 주운 사람들과 잠시 배에서 떠나 육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전해준 성경으로 인해 복음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에게 장사포에서 성서를 받은 소년 홍신길은 서가교회, 석정호에서 성서를 받은 김영섭과 김종권은 강서교회, 만경대에서 성서를 받은 최치량은 한국교회부흥을 이끈 장대현교회의 전신인 평양 널다리골 교회(평양 판동교회)을 세우는 중심적인 역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을 죽인 박춘권이 그가 준 성경을 받지 안 했지만 그의 행동에 기이한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가던 중 주은 성경책을 읽고 회심하여 후에 평양선교를 위해 온 사무엘 마펫선교사를 만나 세례받고 안주교회의 영수(장로)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을 받은 조카 이영태도 주님을 영접하고 미국 남장로교회 소속 레이놀즈선교사의 조사(전도사)가 되어 성경변역위원회의 맴버로 한글 성경번역에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의 순교는 결국 평양복음화의 초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영향으로 세워진 교회중에서 교회부흥의 역사의 시발점이 된 장대현교회의 설립과정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준 성경을 받은 12세의 소년 최치량은 당시에 쇄국정책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금지하고 탄압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겁을 먹고 갖고 있던 한문성경을 영문주사인 박영식에게 주었고 박영식은 버리기 아까워 성경을 찢어 벽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1891년 최치량은 성인이된 후 널다리골에 있는 박영식의 집을 매입해 여관(주막)을 경영하게 됐는데 그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사무엘 마펫(마포삼열) 선교사와 한석진 조사(전도사)가 우연히 이 여관(주막)에 머물게 됐다고 합니다. 이들은 온통 성경 말씀으로 도배된 벽지를 보고 깜짝 놀랐고 주인인 최치량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감격하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사무엘 마펫(마포삼열) 선교사는 이 여관(주막)에 머물며 주인 최치량, 전 주인이었던 박영식에게 복음을 전했고 평양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조선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결국 널다리골의 여관(주막)을 예배의 처소로 사용됐는데 나중에 이곳이 평양 최초의 개신교회인 널다리골교회가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여기에 찾아온 사람들은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에게 받은 성경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교회는 후에 장대재 위에 새 예배당을 완공하고 이전하여 장대현교회가 되었고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난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하였으며 이후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란 별명을 얻게 됐습니다.
기와를 얹어 세워진 장대현교회는 건물 모양이 'ㄱ'자 로 독특한 모양이였는데 그것은 당시 조선사회가 남녀구별이 엄격해 출입문을 달리하고 구별해 앉아 예배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가 순교할 당시 20세였던 여인 이신행도 성경 한권을 얻었고 그후 그녀는 평양에서 최초의 여성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아들인 이덕환도 장대현교회의 교인이 되어 장대현 교회의 장로로 시무하였습니다. 이신행.박관선.김성신 등을 중심으로 한 부인 전도회가 조직됐는데 이는 한국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여자들로 구성된 조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866년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의 순교로 인해 뿌려진 복음의 열매가 평양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회상하며 하나님의 섭리의 놀라움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기독교는 일본에 저항하며 자주 독립을 위한 노력의 중심이 되었고 3.1운동을 앞장서서 주도하는 역사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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