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3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섭식장애로 어렵게 음식을 넘기며 하루 하루 힘든 날을 보내시던 엄마가 급기야 눈이 뒤집어지고 시름시름 앓던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했었습니다. 곁에 있으면 무엇이라도 해드릴 수 있지만 머나먼 호주에 사는 자식은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무리 요양병원에 의사와 간호사가 있지만 어디 자식의 눈으로 살필 수가 있겠습니까?
다행히 큰 고비를 넘기시고 회복중입니다. 노환에 체력에 많이 떨어져 회복이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참 다행입니다.
한 시간동안 통화하며 노래도 함께 부르고 숫자도 1에서부터 100까지 나누어 세고 마비가 온 오른손이 회복되길 바라며 손뼉도 치고 두 손을 들었다 내렸다 운동도 하고 추억의 이야기도 나누며 엄마와 같은 하늘이 아닌 바다 건너 사는 자식의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일주일에 4일을 함께 하며 멀어진 거리를 좁혀 왔었지만 …
하지만 이것이 30분으로 짧아졌고 20분으로 점점 짧아지게 된 것은 엄마의 상태가 조금씩 안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치매의 진행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마음이 참 타들어가게 만들었습니다.
숫자 세는 것도 점점 줄어들게 되고 노래부르는 곡도 줄어들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말을 하기가 점점 힘들어질 때가 제일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엄마의 얼굴을 못 뵌지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보고 싶어도 하늘길이 막혀서 못 가고 백신접종을 통해 갈 수 있는 조건은 되었지만 엄마가 계시는 요양병원의 방문객 금지로 인해 가도 못 뵙는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으로 울게 만듭니다. 보고싶은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데 …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엄마의 눈동자로 저는 알 수 있습니다. 말로는 괜잖다고 하시며 그저 지금도 우리를 먼저 생각하시는 엄마의 마음은 제가 정말 세상을 살아가는 원천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만 저는 그래서 넉넉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 생각으론 편도선이 염증으로 커지게 된 것도 치매로 인해 목 넘기는 근육의 원활치 못한 결과라고 생각해 봅니다. 어렵게 넘긴 음식이 편도에 남았고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염증이 생기며 불편하게 만들어 더욱 더 음식 넘기는 것을 어렵게 했고 게다가 말도 하기 힘들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속에 엄마의 몸무게는 한때 60kg정도로 약간은 비만인 상태를 유지했지만 점점 빠져서 지금은 41kg까지 내려가 홀쭉해져 버렸습니다. 더 이상 빠지면 안 될 한계까지 몸무게가 빠진 것입니다. 병원에서도 다른 몸의 이상에 의한 체중감소를 판단할 정도였기 때문에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고민하고 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드시는 것을 어렵지만 어느 정도 드시고 변도 보시는 상태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술을 하자고 하는 내과의 의견과 시일이 걸리지만 항생제로 치료하자는 이빈인후과의 의견 사이에서 고민을 했지만 결국은 수술을 하자는 것으로 결론이 나서 수술을 하기 위한 사전 점검에서 엄마는 심장의 상태나 영양상태가 수술을 받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기에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몸으로 회복이 급한 우선 과제였습니다. 당연히 입원기간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상황이었고 음식을 드셔야 했기에 마지못해 코로 삽관을 하지 않을 수 밖에 없어서 죄송하고 죄송한 마음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
요양병원으로 가게 되면 얼굴을 뵐 수 없기 때문에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11월 1일부터 해외출국을 허용한다는 발표로 한국에 갈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비행기 티켓도 알아 보며 엄마의 상태를 예의주시하며 엄마를 볼 수 있다는 희망에. 마음을 조아리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
동생으로부터 온 소식은 좋으면서도 아쉬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수술을 하지 않고 항생제 치료로 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일주일 안에 퇴원해서 요양병원으로 되돌아 가신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가서 엄마를 직접 대면할 수 있다는 바램이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일주일에 4번을 화상통화로 뵌 엄마를 일주일이 넘게 못 뵈고 통화를 시도했지만 간병사의 메세지에 가슴이 철렁하게 만듭니다. 상태가 안 좋으니 다음에 전화를 달라고 ..
또 한번 가슴이 무너집니다. 도대체 얼마나안 좋으시길래 저렇게 말씀하는지 마음이 또 타들어 갑니다.
그리고 10여일만에 뵌 엄마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어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처음으로 본 코삽관과 눈도 못 뜨시고 숨을 가쁘게 쉬시며 괴로운 신음을 내쉬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 엄마 엄마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온 몸은 항생제의 영향으로 통통 부우셔서 사경을 헤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옆에서 간병하시는 간병사님도 참 안타까운지 한숨을 쉬고 지켜보시며 연신 눈을 닦아드리며 눈을 뜨고 보게 하시려고 하지만 눈을 뜨지 못 하시고 앓고 계셨습니다.
얼굴만 보다가 어쩔 수 없이 끊고 난 나는 몸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이국땅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정신없이 살아 오면서 메말라 있던 눈물샘이 저를 촉촉하게 젖게 만듭니다. 쏟아지지는 않지만 저의 말라버린 감정을 살아나게 만듭니다.
아 우리 엄마!
어떻게 해,
어쩜 좋아, 엄~~~~마
다음에 통화할 날에 차마 통화할 염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전날 간병사님으로 부터 온 메세지때문이였습니다. 그리고 이틀후 본 엄마는 여전히 힘들어 하시며 눈도 못 뜨고 한마디도 하지 못 하셨습니다. 전혀 차도가 없는 엄마로 인해 가슴이 너무 먹먹했습니다. 노환에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몸으로 힘들게 버티시는 엄마가 침 고마웠습니다. 이제 요양병원에 오신지 일주일, 간병사님으로부터 온 사진 한 장속에 그간 엄마가 겪은 힘듦이 오로시 묻어 있었지만 그 힘든 과정을 이겨내신 엄마가 너무도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어제 짧은 통화로 그저 쳐다만 봤습니다.말없이 그저 얼굴만 보고 있었습니다. 노래도 못 부르고 숫자도 못 세고 운동도 못 하고 말도 나누지 못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저 건강만이라도 다시 회복되시길 간절한 마음뿐입니다.
사랑하는 엄마를 이제 바라 만 봐야 하는 이 순간이 너무 밉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회복만 되시면 됩니다.
나의 전부이신 엄마!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