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작년에 한국을 들어가지 못하는 바람에 엄마를 뵐 수가 없었습니다. 가서 2주간 격리하고 또 돌아와서 2주간 격리를 하면 가서 뵐수는 있지만 그렇게게 사정이 넉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못 간 것이지요. 그런데 올해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벌써 올해도 4월이 지나가고 있는데 한국의 사정은 좋아지지 않고 점점 더 감염자가 나오는 상황이라 마음이 답답하고 조바심이 나는 지경입니다. 이러다간 올해도 못 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중풍과 치매로 점점 희미해져가는 기억을 붙잡고 계시는 엄마는 그래도 여전히 환하게 웃으시며 전화를 받습니다. 이제 어느덧 89세가 되셨고 내년이면 90세가 되시는 엄마는 여전히 소녀처럼 수줍어 하시고 부끄러워서 멋쩍게 웃는 멋쟁이 엄마입니다.
이곳 멜본은 지난 일요일 오전 2시를 깃점으로 일광절약제가 해제된 날이었습니다. 즉 2시간의 시차가 있던 한국과 호주는 이제 1시간의 시차로 변경이 된 것인데 그것을 깜박해 알람설정을 바꿔놓지 못 하고 평상시보다 1시간이나 늦게 전화를 하고야 말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요즈음은 엄마가 직접 전화를 받을때가 많습니다. 늦게 전화를 드려서 통화를 못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엄마가 직접 받으셔서 통화를 했는데 간병사님의 말에 의하면 1시간이나 앉아서 전화오길 기다렸다는 겁니다. 얼마나 죄송하고 감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방적으로 제가 전화해서 통화하시는 줄 알았으나 직접 전화하시진 못 하지만 엄마도 때가 되면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감격을 한 것이지요.
보통 전화통화는 20분 정도하는데 대부분 제가 말하고 엄마는 대답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는데 그 이유는 풍으로 인해 오른쪽으로 마비가 오면서 엄마의 말하기가 다소 불편하시고 많은 단어들을 잊으셔서 선듯 말이 떠오르지 않으니까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통화가 비슷합니다.
1. 엄마! 저녁 진지드셨어요? 드렀다.
2. 맛있게 다 드셨어요? 죽밥 다 먹었어. 싫어 하시는 죽을 끼니로 매번 드시니 거부감이 이만 저만이 아니지만 어쩔수가 없습니다. 2번이나 기도로 음식물이 들어가 큰 일날뻔 했었기 때문입니다.
3. 반찬은? 국은 뭐 드셨어요? 미역국(항상) ..... 일년내내 우리 엄마가 드시는 국은 미역국입니다.
4. 김치, 콩나물무침, 고기, 시금치무침 뭐 드셨어? 하나만 말해 봐. 머뭇거리며 웃음으로 대신 ...
5. 오늘 어떻게 보내셨어, 엄마? 재미있었던 것 있으면 말해줘 봐. 어영부영지냈다.
아이쿠 우리 엄마 엄청 심심하셨겠네. 죄송해요. 같이 있어야 하는데 멀리 떨어져 살아서 ...
6. 간식은 뭐 드셨어, 엄마? 바나나 .... 이것도 매번 같은 대답을 하신다.
7. 어디 아프시거나 불편하신데는 없으세요? 대부분 괜찮다고 하시지만 최근에는 머리아파 .. 허리아파 하며 의사표현을 하셔서 놀랜적이 있었고 간호사분께 전화해 부탁드린 적이 있었다.
8. 엄마 발가락 한번 움직여 봐. 움직여
9. 오른손 좀 보여줘, 엄마. 어깨가 굳어서 잘 올라오지 않고 곱은 손 보여주기 싫으셔서 싫다고 하다가 억지를 부리면 마지 못해 들어서 보여 주시는데 ... 펴지지가 않고 오무라 들어서 볼때마다 속상한 마음에 펴보라고 때를 써보지만 점점 더 오무라 든 손을 보게 된다.
10. 엄마고향은 어디야? 고창군 상하면 하장리 오룡 하고 또렷이 말씀하신다. 절대로 잊지 않는 고향. 즉 나에게 외가이다.
11. 어메, 연세가 몇이셔? 하고 물으면 ... 대부분 75세라고 하시고 거끔 바로 내가 말해주고 물어보면 89세하고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또 되돌아 가버린다. 단기기억하는 뇌부분은 많이 손상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12. 박수 열번만 쳐보자, 엄마 하면 오그라든 손으로 열심히 치신다.
13. 엄마 내 이름이 뭐야? 가끔 정신이 없으시면 잊어 버리고 안타까운 표정을 짖곤 하지만 대부분은 기억하신다. 김사하게도
14. 매번 통화할때마다 하는 숫자세기 1에서 30까지, 30에서 50까지, 50에서 70까지 그리고 70에서 100까지 함께 숫자를 센다. 1에서 30까지는 컨디션이 좋으면 혼자서 잘 세신다. 아무튼 숫자세기가 엄마의 상태를 우지하는데 굉장히 좋은 효과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15. 그리고 마지막에는 엄마가 좋아하시는 트로트 한곡을 함께 부르는데 ... 말이 억눌해서 그렇지 자세히 들어보면 가사를 다 기억하시고 부르신다는 것을 알고 놀랄때가 많다. 소양강처녀, 한많은 대동강, 목포의 눈물, 비 내리는 고모령, 삼다도, 단장의 미아리고개, 찔레꽃, 처녀 뱃사공, 해당화, 흑산도, 봄날은 간다 등을 매번 한곡씩 엄마와 부르곤 한다.
16.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사드리기전에 엄마에게 덕담을 해달라고 하면 .. **야, 잘자고 잘 일어나서 좋은 일 많이 하기 바란다. 하시며 아들의 잘돼기를 학수고대하신다.
매번 같은 형식의 대화이지만 엄마는 참 기꺼이 응대해주시고 환한 웃음을 선사하신다. 비록 병원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시면사 살 수 밖에 없으시지만 오래 사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자식으로서 함께 하지 못 한 불효를 씻을 수는 없지만 통화하는 시간만큼은 환하게 웃으시고 즈러워하시도록 어떨대는 광대가 되고 코메디언이 되더라도 사시는 동안 외롭지 않고 항상 엄마옆에 아들이 지키며 보살핀다는 것을 알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