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 CCM

새벽기도의 역사와 의의

onchris 2021. 9. 2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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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하고 특이한 신앙적 단면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새벽기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자는 새벽기도가 한국의 민속신앙인 샤마니즘을 본 따서 이뤄졌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깊은 기도가 필요하시면 새벽에 기도를 드렸듯이 영적으로 깨여져 있는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것이 지금의 새벽기도로 발전하여 온 것입니다. 선교사들에 들어온 복음을 받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영적인 호흡인 기도를 새벽시간을 통해 나누면서 많은 은혜와 깨달음으로 얻으면서 시작이 된 것입니다.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기록으로 보는 첫 새벽모임은 1892년 2월 황해도 강진교회 사경회에 참석한 일반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새벽 기도회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1891년 채택한 네비어스의 방법에 따라 본토인 목회자와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 선교사들은 1892년 10명 정도의 한국인 남자 지도자들과 조사를 모아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성경, 교리, 전도법, 설교법, 교회 치리법 등을 가르치는 사경회(査經會)를 조직했습니다. 사경회에서 집중적인 교욱을 받는 중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새벽기도회을 시작하면서 점차 알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1892년 11월 28일부터 12월 2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첫 신학반에 참석한 백홍준, 한석진 외 참석자들이 새벽에 일어나 자발적인 기도회로 모였습니다. 이후 이 조사 사경회에서 새벽에 일어나 찬송하고 기도하는 모임이 계속되었고 조사 사경회의 새벽 기도회가 황해도에서 일반사경회 새벽기도회로 발전되었던 것입니다. 

선교사들에 의해 지도자를 양성하는 사경회를 통해서 시작된 새벽기도회는 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증가하게 되었고 1901년 2월에 황해도의 다른 사경회에서도 교인들이 새벽 기도회를 시작했으며 평북 초산(1901), 원산(1903), 평양(1904), 서울 이화학당(1904), 송도(1905) 등의 사경회에서 이루어진 새벽기도 사례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어서 1909년 길선주와 박치록 장로가 주도한 평양 장대현교회의 새벽 기도회가 만들어 만른 사람들이 참가했으며 이는 한시적으로 사경회때 일주일 정도의 기도회였다고 합니다.

네비어스 선교방법: 선교사 네비어스(John L.Nevius)가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위하여 창안한 선교방법론.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3자 원칙', 즉 토착인이 토착인에게 전도하도록 하는 '자전'(self-propagation), 토착 교인이 토착 교회 목회자의 생활비와 교회 운영을 책임지도록 하는 '자립'(self-supporting), 그리고 토착 교회 문제를 토착 교인들이 처리하도록 하는 '자치'(self-governing)입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위'3자 원칙'은 네비어스보다 먼저 제시했던 인물들이 있었다. 그들은 1840∼70년대 영국 교회와 미국 교회의 해외 선교 정책을 입안했던 헨리 벤(Henry Venn)과 루퍼스 앤더슨(Rufus Anderson) 등이었고, 네비어스는 그 원칙을 중국 선교 현장에 적용하여 보다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정립하였다고 할 수 있다.

새벽기도회가 교회에 알려지긴 했지만 정식적으로  모임으로 채택이 되고 활성화된 것은 평양의 장대현교회후 10여년이 지난 1920년 후부터 인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07년 대(大) 부흥 이후 1910년대에 새벽 기도회가 한국교회에 널리 시행되고 매일 새벽에 모인 것에 대한 기록은 없다는 것이 이를 반증합니다. 1914년에 시작한 강화도 마리산 부흥회때나 사경회때만  새벽 기도회를 그 기간동안 드렸다고 하며 아직 개교회 차원에서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또 교회에 홀로 새벽에 나가 개인적으로 작정기도를 드린 예들이 있고 또 3·1운동이 일어나기 전 신석구 목사의 개인 새벽기도 등에서 보듯이 1919년 이전에는 매일 새벽 기도회로 모이는 교회가 없었습니다.자주독립을 위해 1919년 3.1운동을 한 후 교회가 주도적인 역활을 한 댓가로 일제로부터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신도들의 엄청난 핍박과 고통을 받았습니다. 믿음을 지키지 위한 방편으로 새벽 기도회가 매일 드리는 일상의 기도로 거의 모든 교회에서 자리 잡은 것은 이렇게 어려운 환경속에서 더욱 기도가 간절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세계에서 유래를 보기 힘든 부흥을 이루는데 이 새벽기도가 큰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도한 나라들조차 연구할 정도로 한국교회에만 있는 특징인 새벽기도를 더욱 더 활성화시켜 많은 문제점으로 쇠락해가고 있는 믿음의 불씨가 다시 솟어 오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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