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 CCM

평안과 편안의 차이

onchris 2022. 3. 3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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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편안함을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제 정신이라면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편안함은 본인도 좋지만 이로 인해 타인의 부러움에 우쭐해지게 만들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적인 마음입니다. 이 편안함을 위해서 우리는 열심을 다 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쟁취하고자 합니다. 

 

추구한다. 특히 젊은 20,30대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힘든 직장은 아예 선호하지 않고 육체적으로 편안한 곳을 택한다. 사실 편안함이 육체적인 것이라면 평안은 정신적이고 마음적인 상태를 말한다. 육체적으로 편안하다고 해서 마음으로나 영적으로 평안함을 얻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육체적으로 편안한 곳은 어쩌면 정신적으로 엄청 힘들 수 있다. 편안함이 평안함을 가져다준다고 보장할 수 없다. 육체적인 편안함이 오히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주어 마음에 평안함을 앗아간다. 그리고 주거지도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곳이라면 생활이 너무 편하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이 정말 평안함을 줄 수 있을까? 넓은 주거지에서 값비싼 침대에 자면 육체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숙면(熟眠)을 통한 평안을 담보하지 않는다. 어쩌면 불편한 환경 가운데서도 평안함이 있으며 단잠을 잘 수 있고, 육체적인 쉼과 기쁨을 얻을 수 있다.

 

  1. W. Target이 쓴 ‘창’이라는 단편 소설의 내용이다. 어느 작은 병실에 두 남자가 입원해 있었는데, 한 사람은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환자이고, 또 한 사람은 디스크 환자였다. 디스크 환자는 수술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지만 폐암 환자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병세로 보자면 폐암 말기 환자의 상황이 훨씬 절망적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왜 그런지 늘 평안과 기쁨이 있었다. 하루는 디스크 환자가 창밖을 보고 있는 폐암 환자에게 밖에 무엇이 보이냐고 물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말했다. “아름다운 호수에 보트와 백조가 한가로이 떠 있고, 호숫가를 산책하는 여인들과 잔디밭에서 놀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보이네요.” 이 말을 듣고 디스크 환자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는 폐암 환자의 얼굴에 늘 기쁨이 있는 까닭이 그의 침대가 창문 곁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는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빨리 폐암 환자가 죽어서 나가면 저 창가의 침대를 차지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폐암 환자가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신음하기 시작했다. 디스크 환자는 비상벨을 눌러서 의사를 부를까 하다가 그대로 두었다. 그의 침대를 차지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침이 밝아올 무렵 갑자기 옆 침대가 조용해졌고, 고통 받던 폐암 환자는 그의 기대대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창문 곁 침대로 옮기게 되었다. 그는 옮기자마자 있는 힘을 다해서 침대를 붙들고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창밖에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회색의 콘크리트 담벼락뿐이었다. 그는 그제야 폐암 환자의 기쁨이 환경 때문에 생긴 기쁨이 아니라 그가 선택한 기쁨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기뻐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언제나 기뻐하기로 마음먹고 아름다운 호수를 상상하면서 기뻐하며 살았다.

그렇다. 편안함과 평안함의 차이가 무엇일까? ‘편안’은 몸과 환경의 차원이고 ‘평안’은 마음의 차원이다. 다시 말해서 편안함은 주어지는 것이고, 평안함은 내가 취하는 것이다. 환경이 편안하다고 마음까지 평안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음이 평안하면 살아가는 모든 것이 편안할 수 있다. 생활이 편안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에 평안함이 있으면 생활이 편안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고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편안함과 쉬운 삶이 아니라 ‘땀 흘리며 수고’하는 근면을 요구하면서 참 평안(샬롬)을 누리며 살 것을 강조한다. 이 평화는 근원적으로는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죄는 평화를 깨는 주범이다. 그러나 생명의 주님과 깊은 관계가 더할수록 평안함은 더 깊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환경을 탓하거나 그것에 연연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을 만끽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unto you: not as the world giveth, give I unto you.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neither let it be afraid).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대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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