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 시간이면 비행기에 오르고 한국으로 간다.
엄마가 계시는 고향이다
비록 따듯한 집에 계시지 못 하고 병원에서 생활하고 계시지만
그저 살아계신 것 만으로도 좋고 가슴이 설랜다.
나를 알아 보실까?
일년만에 보는 아들인데 알아 보실 수 있을까 궁금하다.
못 알아 보시면 그 만큼 치매가 더 진행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마음이 더 찹찹해 질 것이다.
아이쿠 우리 큰 아들이 왔구나 하시면서 두 팔을 벌리고 안아
주시길 간절히 고대해 본다.
따듯한 엄마의 품에 꼭 안겨서 엄마의 체온을 느끼고 싶다.
벌써부터 실망을 하면 안 되겠지.
얼마나 나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실지 모르지만
다 잊었다면 다시 차근 차근 알려 드리고 기억하시도록
하면 되니까. 기억하신 것이 하루 지나서 아니 반 나절만에
아니 한 시간 후에 사라 진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아야지. 엄마는 그 시간만큼은 행복하실테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 드려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이겠지.
나이를 먹는 것,
늙어 간다는 것,
그로 인해 몸이 건강하지 못하고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우리의 삶이기에 너무 아쉬워하진
말아야 겠지. 나이를 먹고 늙어 가더라도 아프지 않고
사는 삶이길 모든 사람의 소망이지만
우리 엄마는 피하지 못 하시고 병원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지하여 살고 계신다. 현실을 받아 드리며 아직 우리의 곁에
계신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자식의 도리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사는 것 자체만으로도 버거운 삶을 살아 오셨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드셨고 또 본인의 건강을 돌볼 틈도 없이 살다가
한 순간 찾아온 풍으로 인해 한쪽의 마비가 와버린 안티까운
현실이 너무나 얄긋다.
이제 좀 마음 편안하게 사시면 되는데 …
사는 것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이지만
마음이 짠해진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예전과 판이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계시기에 그저 미안스럽고 죄스러운 마음이다.
거의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할 수 없는 현실을
엄마는 어떻게 받아드리고 계실까?
물어봐도 항상 괜찮다고 하시니 …
묵묵히 속으로 삼키시면서 우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리라 생각하니 ...
목이 메어 온다.
단 하루라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하시고
좋은 것 먹지도 좋은 옷 입지도 못 하시고 사시다가
이젠 병실에 누워 계시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식에 대한 걱정과 행복만을 기원하시며
살아 오셨고 또한 그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더
아련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미 많은 시간들을 놓쳐서 죄송하기도 하고 게다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에 더욱 더 송구스럽다.
살아 계시는 동안 아니 지금 이렇게 함께 있는 이 귀한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만들어 드려야 할까?
함께 있는 이 짧은 일정을 많은 추억을 만들어 오롯이
엄마의 가슴에 한 가득 안겨 드리고 싶다.
타인의 도움없이는 외출도 마음대로 하실 수 없으니
엄마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매일 밖으로 나가서
답답한 병실에서 벗어나게 해 드려야지.
엄마하고 화상통화로만 함께 불렀던 엄마의 애창곡들을 같이
노래방에 가서 함께 신나게 목청껏 불러 봐야지.
좋아 하시는 짜장면도 먹어보고 불고기도 먹어 봐야지.
답답한 병원으로 부터 잠시만 이라도 벗어나 일상으로
되돌아가서 무작정 재래시장에도 가 봐야지.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며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사람도 구경하면서
잠시나마 예전의 추억을 더듬을 수 있게 해 드려야지.
일년에 단 이주일의 시간만 낼 수 있는 나의 처지가 너무 안타깝지만
할 수 있은 것을 찾아서 함께 걸어 보도록 해야겠다.
다행이 엄마의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나의 모교인 신일고등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병원에 계셔서 날씨 좋은 날 함께 산보하며
예전의 추억을 끄집어 내보며 거기에서 추억의 한 컷을 만들어 봐야겠다.
도시 지하철에 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으니
지하철을 이용해 좀 먼 곳도 가보자.
그리고 말은 안 하시지만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많을텐데 …
보고 싶다는 말씀을 안 하시지만 분명 만나고 싶고 이야길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실거라 생각한다.
엄마의 마음으로 들어가 어떤 생각과 어떤 바람을 갖고 있는지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보고 계시는지 무척 궁금하기만 하다.
또 엄마는 현재 본인의 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시는지 덤덤한지
힘드시는지 끔찍하게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겨우 겨우 보내시는지.
자연스럽게 생각을 공유하기 힘들어 나 나름대로 추측을 해서
상황인식을 해야 하니 가늠하기에 참 어렵다.
이제 2시간이면 한국에 도착한다.
지척이다.
한 걸음에 달려가면 곧 볼 수 있는 거리까지 왔다.
엄마는 나를 기다리며 반기실까?
아니면 이미 기억에서 지워졌을까?
잊어 버렸지만 보시면 알아 보실까?
그것도 아니면 눈만 끔벅거리시면서 누굴까 하고
사라진 기억들을 더듬고 계실까?
자꾸만 엄마의 시간만 세상보다 빨리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안 좋다.
반대로 세상보다 조금만 더 천천히 가면 좋겠는데 ...
환하게 웃는 엄마와 진한 포옹을 하고 싶은데 ...
세상에 그 흔한 것조차 누리지 못 하시고 88세를 드셨는데...
엄마를 어제 뵙고 두번째 뵈러 가는지하철 안이다.
만나기 전 엄마 모습에 상당한 걱정을 하며 갔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엄청 걱정할 정도는 아니어서 마음이 놓었다.
치매의 진행으로 입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 말을 어눌하게 하시는 것
빼고는 그리 염려할 정도까진 아닌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나도 기억하시고 또 더 나가 큰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예전 기억을
완전히 잊으신 것은 아니어서 다행스러웠다.
막내에 대한 기억이 없어진 것처럼 통화를 할 때 느꼈지만 딱히 그렇게
잊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좋았으며 사진속에 있는
엄마와 아버지를 대번 알아 보셔서 감사했다.
그런데 왜 나만 보시면 아버지의 안부를 물어 보실까?
내가 보아도 거울속에 비춰진 내 모습은 생전의 아버지와
참 많이 닮은 것을 알지만...
엄마도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시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엄마는 아직도 아버지가 살아계시는지 돌아 가셨는지 모르고 계신다.
아시게 되면 어떤 충격을 받으실 지 몰라서 말 할 수가 없다.
풍을 2번이나 맞으셨기에 다시 한번 더 맞게 되면 엄마의 건강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기 어려운 현실이 안타깝지만
살아계신 엄마를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것이니 ...
다만, 나를 보시고 자꾸 너를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하시는 것을 보면 흐려지는 기억때문에 힘드신 것 아닌가 생각된다.
전화로 일주일에 4번을 영상통화하면서 얼굴을 봐 왔는데도
불구하고 영상이미지와 직접 보시는 것과는 많이 다르신지
다른 소리를 하시는 것을 보면 더욱 더 실감을 하게 하신다.
하지만 엄마가 예상한 것보다 치매의 진행이 많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안도가 되고 염려가 된 부분이
많지가 않아서 참 감사하다.
지금 엄마에게 가면서 딱히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 지 계획한 것은 없지만
엄마하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끄집어 내어보자.
오늘은 나의 첫번째 버킷리스트였던 모교인 신일고등학교를 가보자.
점심을 먹고 휠체어를 몰고 천천히 가보자.
거기서 사진도 찍고 예전의 추억을 더듬어 보자.
졸업식후 졸업사진을 찍었던 장소에서 예전 사진을 보여 드리면서
추억을 끄집어 내보자.
기억을 찾아 오실 수 있을까 모르겠다.
특히 오늘은 일요일이라 다른 제약조건이 없으니까
교정도 걸을 수 있으면 걸어보자.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학교모습이 많이 변했을까?
그대로 일까?
어릴적 추억을 더듬는 것이라 나도 많이 설랜다.
오고 가는 길에선 우리가 함께 영상통화하면서 불렀던
모든 노래를 한번씩 같이 불러 봐야지.
일년전만 해도 또박또박 잘 부르셨는데 지금은 말이 어눌해지는
바람에 노랫가사가 제대로 나오질 않아 속상하지만
안 나오면 안 나오는 대로 같이 신나게 불러봐야지.
그리고 저녁에는 가까운 음식점이라고 가서 함께 엄마와
식사를 해야겠다. 이 병원에 오셔서는 한번도 밖으로 나가보지
못 한 것 같아 바깥바람을 쐴수있는 기회를 만들어 드리고 싶다.
비행기를 타고 온 피곤이 엄습해서 몸은 많이 무겁지만
사랑하는 엄마를 보러가니 이정도는 아무 문제가 없는
일요일 아침 9시다.